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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위의 정물 <박미정>

작성자 Leica(ip:)

작성일 2023-05-04

조회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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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피아노 위의 정물 <박미정>



모든 사물들 속에는 노래가 잠들어 있고 

그 사물들은 계속 꿈을 꾸고 있네

만일 그대가 주문을 외운다면

세상은 노래 부르기 시작할 것일세


- 아이헨도르프의 시, <마술지팡이>에서



 






미술사에서 정물화(Still life)는 시대별, 지역별로 다채로운 특징을 선보였다. 정지된 대상(사물, 식물, 꽃 등)에 대한 자연주의적 묘사를 통해 사물에 숨겨진 다양한 의미와 상징을 드러냈는데 그 중에서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는 하나의 양식으로 굳어질 만큼 짙은 호소력을 발휘한다. 바니타스는 필멸할 수밖에 없는 존재의 예술적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라틴어에 어원을 두고 있으며, ‘vanitas vanitatum et omnia vanitas(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허무하다)’라는 구약성서의 전도서 부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용어 자체에서 죽음의 알레고리(allegory)가 함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17세기 북유럽과 독일, 네덜란드 서부의 레이덴(Leyden) 지방에서 활동했던 몇몇 화가들의 작품에서 도상학적 계보를 추정할 수 있는데 대개 해골, 꽃, 시계, 서책, 보석, 거울, 악기, 도자기로 된 병, 깨진 술잔 등이 등장하며 세속적인 삶과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상징한다. 해골은 대표적인 죽음 이미지이고, 시계는 한정된 시간과 소멸의 알레고리이다. 보석과 거울은 부귀영화의 덧없음을 보여주고 도자기와 깨진 술잔은 찰나적 인생을, 시든 꽃은 영원하지 않은 삶을 비유하며 바니타스 정물화의 대표적인 도상이 되었다. 시간 속에서 영원불멸하는 것은 없고, 끊임없이 변하고 움직이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는 것을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계속 경험할 수밖에 없다. 삶과 죽음이 거의 모든 예술작품의 주제, 소재인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사진은 존재론적으로 죽음과 아주 가깝게 연결되어 있어 죽음의 알레고리로 자주 언급되곤 한다. 사진과 죽음은 손탁(Susan Sontag)의 ‘죽음의 마스크(Death Mask)’ 비유처럼 꼭 달라붙어 있다. “사진은 죽은 사람의 얼굴을 본뜬 마스크나 발자국처럼 현실을 직접 등사한 그 무엇, 혹은 현실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마스크와 사진은 둘 다 피사체의 삶과 죽음의 흔적을 드러내고, 사진 속에서 삶이 지속(Still-Life)되는 신비스러운 연관성을 환기시켜준다. 이어 손탁은 “모든 사진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또는 사물)의 피할 수 없는 죽음(mortality), 연약함, 무상함에 동참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사진하는 사람들에게 각인 된 손탁의 명언이다. 바르트의 영향 아래 사진의 죽음을 서술한 손탁은 사진을 찍는다는 것을 타인의 피할 수 없는 죽음에 참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을 찍자마자 사진 찍힌 대상은 곧장 과거의 시간대에 머물기 때문일 수도 있고, 사진에 찍힌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언젠가는 죽음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진 속에서는 현존하지만 실재는 사라지고 없는 즉, 사라짐으로서 살아나는 사진의 존재론적인 특성을 손탁은 주시하였을 것이다. 사진은 처음부터 변하거나 소멸하는 것을 붙잡아두려는 욕망이 있었다. 이미 죽었지만, 사진 속에서 '여전히 살고 있는(Still-Life)' 이미지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있었던 것이다. 







박미정은 신작 <볼드윈(Baldwin) 위의 정물>에서 아주 고요하고 절제된 배경의 색조와 정물을 선보인다. 사진의 주인공이 된 정물은 각종 과일, 깨진 유리병, 금이 가고 이 나간 그릇과 도자기 등 일상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다. 박미정은 집을 리노베이션하면서 배출된 벽돌과 타일조각들을 오브제로 활용해 사진콜라주를 선보인바 있다. 신작 <볼드윈(Baldwin) 위의 정물>도 같은 선상의 작업이다. 볼드윈(Baldwin)은 재즈 뮤지션들이 사랑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피아노 브랜드이다. 디자인이 심플하고 크기가 아담하여 고급스러운 가구로 거실 한켠을  차지하기엔 안성맞춤인 피아노-가구였다. 작가의 집 거실에서도 한때는 근사하고 우아한 자태를 뽐냈으리라.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조율되지 않고 굳게 닫힌 채 제 소리를 내지 못하게 되었다. 그 피아노 위에 사람의 손길이 멈춘 갖은 사연의 사물들을 호출하여 찍은 사진이 바로 <볼드윈(Baldwin) 위의 정물>이다. 작가는 어느 해 문득 살던 집의 구석구석을 살피다 40년이 훌쩍 지난 볼드윈과 구입 한 후 어디에 두었는지 잊고 있었던 사물들, 깨지고 먼지투성이인 그릇을 만난다. 그릇들이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마치 기억의 소리처럼 울렸을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렘과 한때 작가의 손이 귀하게 스쳤을 기억을 그릇은 간직하고 있었다. 작가는 ‘사진’이라는 주문을 걸어서 사물들 속에 잠들어 있었던 노래를 하나하나 깨운다. 아이헨도르프의 ‘마술지팡이’처럼, 작가를 만나 사진 속으로 들어온 사물들은 볼드윈 위에서 다시 노래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이 사진들이 고풍스럽고 정제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는 것이다. 모든 시간이 그 안에서 정지된 것 같은 묘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아무 말 없이 그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사물들을 보자니 형용할 수 없는 시공의 간극이 느껴진다. 사진 속에서 서로 상처인 것들이 만나 서로의 꿈을 어루만지는 즉, 볼드윈은 썩어가는 과일을, 깨진 도자기는 볼드윈을 지지하고 있었다. 사람도 그러하듯 상처는 쉽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상처를 안은 다른 사람에 의해 겨우 그 상처가 발견될 뿐 겉으론 멀쩡하게 상처를 은닉하고 있을 뿐이다. 박미정의 ‘볼드윈 위의 정물’들은 사진 속에서 서로를 회복시키고 있었다. 단순히 오래된 것들의 재현이 아니라, 사물의 오랜 꿈을 현재화하여 회복하려는 이미지인 것이다.








그러니 박미정의 사진은 더듬으며 봐야 한다. 촉각, 즉 더듬기는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대면 혹은 접촉으로 인해서 인지되는 감각이다. 그의 사진을 더듬으며 봐야 시각적 촉각, 청각적 시각의 공감각적인 지각이 이뤄지며 사물의 내밀한 속살에 닿을 수 있다. 여기에서 ‘본다는 것’은 이해의 차원이 아니라 새로운 감각기관들을 깨우며 새로운 감성의 발견으로 나아가는 경험의 과정이다. ‘자기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볼드윈과 사물들’에 닿으려면 시각의 지각과정과 촉각의 지각과정이 동일시되어야 한다. ‘모든 것의 결론으로서의 죽음’이 결코 이해의 차원이 아니듯, 삶의 어둠과 우울, 모호함과 허무함을 내장한 바니타스 이미지에 다가가기 위해서 바니타스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박미정이 바니타스 정물화의 형식을 취한 것도 한 공간 안에서 오랜 시간 함께 했던 대상에 대한 애도와 결코 보편화될 수 없는, 자기에게만 특별한 사물들을 제시하는 방법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바니타스 도상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존재’했던 대상을 사진으로 붙잡아 사진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게(Still-Life)하는 바니타스 정물사진은 바르트가 언급한 ‘현존과 부재의 놀이’ 중에서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박미정이 특별히 캐스팅한 볼드윈은 볼 수 없는 소리를 현현하는 역설을 보여준다. 음악은 기쁨과 환희, 불안과 비탄, 그리움과 사랑과 죽음…을 보이지 않는 소리로 표현한다. 그 표현의 대상도 추상에서부터 구체적인 대상과 인간의 내면까지 다양하다. 박미정의 <볼드윈(Baldwin) 위의 정물>이 공감각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사진 속의 사물-대상이 꾸었을 꿈들과, 잠이 들기 직전에 경험했던 색깔과 음 그리고 냄새가 모두 하나로 몽롱하게 합체되기 때문이다. 볼드윈 위에서 꽃들이 피고지고, 커피 잔에 닿았던 입술의 색깔이 붉다가 창백해지고, 피아노 건반을 두드렸을 손들이 어딘가로 사라지고, 햇살을 받아 풍만하게 살이 오른 과일의 절정이 그려진다. 우리의 모든 일상에 어디에나 흐르는 리듬과 박자와 선율이 이 사진 속에서 흐른다. 그러니 주문을 외워라! 일상의 잠든 노래가 깨어날 터이니.  



글 : 최연하(독립큐레이터, 사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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